제비는
골프장이 아니라 여기 있네
“꼭 듣고 싶어요?”
“그렇다니까요?”
“요즘 전 에이즈 무섭고 사람 만나는 게
귀찮아서 셀프서비스로 즐겨요.
시원찮은 남자 만나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그리고 셀프서비스
플러스 태반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아주니까 적어도 내 몸에게 미안 하지는 않죠.”
“섹스를 즐기는 것 같지
않군요.”
“나름대로 즐긴다고요.
나 정열적인
여자예요.
기계만 못한 남자가
세상엔 더 많아서 기계와 즐기는 거죠.”
“그렇다면 할 말이
없군요.
전 얼마 전까지
고정적인 섹스 파트너를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듣고 보니 그
방법 꽤 괜찮아 보이네요.”
“제 경우가 정답이라는 건
아니고요.
전 누구를 만나 감정
따위로 피곤해 지는 게 싫고 인간관계 얽기기 싫어서예요.
섹스파트너를 둘
바에는 결혼을 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박 기자님은 누구에게 간섭 받거나 관리 받는
게 싫으신 거죠?”
기사에도 쓸 수 없는 별반 도움도 안 되는
말들을 들어야하고 소득 없는 말을 지껄여야 하는 상황이 피로를 몰아오고 있었다.
그때 때 맞추어 음식
접시가 날라져왔다.
1분만 더 늦었어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음식은 박 기자가 좋아하는 베이컨까지 곁들인 시저 샐러드였다.
다음은 와인과 더불어
먹음직스런 랍스터가 접시를 차지 한 채 탁자 위를 화려하게 만들었다.
성대한
점심이었다.
“점심에 뭐 이렇게 진수성찬
이예요.
간단한 걸로
시키시지…”
“독신 들은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규칙 잊으신 거죠?”
Q씨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공짜인데
먹어주자.‘
박 기자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듯 점심접시를
모두 비워 냈다.
‘공짜 좋아하는 아줌마를 네가
잘못봤다.
제비는 골프장이
아니라 여기 있네.’
박 기자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Q씨와 헤어져 골프 연습장에 도착 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지만,
레슨 시간을
30분이나 남겨둔 상태였다.
김 부장도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심 프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텅 빈 골프연습장 안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안정된 모습의 남자가 세련된 외모로 골프공을 치다말고 박 기자를 돌아보며 눈인사를 건넸다.
박 기자 역시 고개를
까딱 해 보이고 탈의실에 들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심 프로는 중년 남자 앞자리에 박 기자를
안내하고 동작을 알려주더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혼자 연습을 하는 박
기자의 공은 여전히 사방을 헤매고 있었다.
게다가 뒷자리의
남자가 날리는 공까지 방해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안절부절 하는 박 기자에게
남자는 점잖게 말을 걸어왔다.
<계속>
작가
유현숙(劉賢淑)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띠뱃놀이』
로
등단,
그해
KBS-TV
드라마 작가
3기로 당선.
15년 동안
신문·잡지기자와 르포라이터로
활동,
잡지에 소설과 동화를
연재.
2003년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
현재는 창작 활동과
병행해 사단법인 한국희곡작가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
펴낸 책으로는 『서울 수첩』
『엄마는
홈닥터』
『봉자의
겨울』
『나무여자(근간)』
등이
있다.
또 『체 게바라』는 저자가 8년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노력 끝에 소설로는
세계 최초로 1997년 초판을 발행(자음과모음),
우리나라에서 체
게바라 열풍의 진원지가 됐다.
그후 초판본을 수정
보완해서 2004년에 개정판(열매출판사)을 펴냈으며,
체 게바라 사망
40주년을 맞아 2007년에 다시 양장본으로 새롭게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