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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4

4everLove 2016. 3. 25. 01:42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6/03/24/%ec%97%b0%ec%9e%ac%ec%86%8c%ec%84%a4-%ed%99%a9%ed%99%80%ed%95%9c-%ec%97%ac%ed%96%894/


레미컴미디어신문 : http://remicom.co.kr


[연재소설] 황홀한 여행4


 
 
 


사랑을 찾아 돌아온 이승

 

단단히 혼 좀 내라고 한다는 어르신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천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한 것이고, 어느 할아버지가 야단을 치라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무녀들의 세계는 모시는 할아버지가 몇 명이며, 그들이 누구냐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늙은 무녀도 열두 살짜리 애기무녀가 모시는 어르신이 큰 대감이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세계는 인간의 나이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서열이 곧 법이라고 했다.

 

어느 할아버지가 노하셨어요?”

 

두 손으로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다시 울상을 했다.

 

세 분 다 화나셨어요.”

 

그럼 전 어떻게 돼요? 시합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승컵 안아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는 데 큰일이네요.”

 

앞으로 영원히 우승하지 못할 거라고 하시니 어쩌죠?”

 

네에?”짐짓 놀라고 당황한 척 했다.

 


몇 년 동안 탑 텐 언저리에서 빙빙 돌았다. 어쩌다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도 마지막 날 라운드에서 순식간에 무너지곤 했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몸짓 정도로 실망을 표현했지만, 가슴 속에서는 하늘을 원망하는 아우성이 끝없이 뒤엉켰다. 시합 때마다 오죽했으면 준우승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하나님에게, 부처님에게, 그리고 조상님들에게 애원했을까.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면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라도 달라고 빌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레미컴미디어렙 배마저 놓친다면 정말 선수라는 말 앞에 은퇴를 붙여야 할 상황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스포츠기자들도 어때? 기대해도 되지?” 라는 말조차 걸어오지 않았다. 눈길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거나 손을 슬쩍 들어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선배가 주관하는 문학행사장에서 만난 천녀를 찾아 평택까지 온 것은 절박한 마음의 표출이었다. 이대로 무너지는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번쩍 들어 올리며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하고 싶었다. 우승 후 은퇴, 그것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내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었다.

 

사과할게요. 죄송해요.”

 

무녀 천녀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장난칠 마음은 아니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사과받지 말라고 하시네요.”

 

눈웃음이 깊었다. 천녀의 눈웃음은 여자의 자상한 눈길이 아니라 할머니가 손자를 가슴에 안으며 쏟는 포근함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따뜻한 표정에도 민망함을 툭툭 털어버릴 수 없었다. 여전히 짧은 어투의 말에서는 차가움이 묻어났다.

 

무섭죠?”

 

맞아요. 무서워요. 이런 감정 처음입니다. 사실 평택으로 오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피식 웃었어요. 아무리 절박해도 그렇지. 무녀를 찾아 가냐? 그것도 이름도 없는 무녀를. 참 한심하다. 인간아! 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고요. 하지만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세 살배기 무녀에게라도 큰절을 올리겠다는 마음, 이해하겠어요?

 

가요. 우리.”

 

그녀가 일어섰다.

 

인사 안 드려요?”

 

누구에게……?”

 

세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려야죠.”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이미 내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왜 찾아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감지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녀는 잔잔한 눈웃음 속에 아주 강하고 질긴 거미줄을 쳐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털 끌이라도 닿는 순간 온몸을 칭칭 감아버릴 거미줄도 충분히 준비한 함정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소설가 정병국

19478월 춘천에서 태어났다.

일간 내외경제, 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 근무하며 인조인형의 집’, ‘안개비’, ‘외다리 춤’, ‘침묵하는 여자’, ‘황사바람’, ‘꿈을 줍는 여자’, ‘타인의 얼굴등 다수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작품집으로는 에세이집 사부곡(思父曲)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장편소설집 가슴속으로 흐르는 강’, ‘이혼의 진실등이 있다. 현재 도서출판 지식과 사람들대표로, 계간 시와 수상문학발행인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국 작가|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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