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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노천의 우리역사산책34] 두 문자가 하나인 것을

4everLove 2016. 2. 15. 02:59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5/11/16/%ec%a0%95%eb%85%b8%ec%b2%9c%ec%9d%98-%ec%9a%b0%eb%a6%ac%ec%97%ad%ec%82%ac%ec%82%b0%ec%b1%8534-%eb%91%90-%eb%ac%b8%ec%9e%90%ea%b0%80-%ed%95%98%eb%82%98%ec%9d%b8-%ea%b2%83%ec%9d%84/


레미컴미디어신문 : http://remicom.co.kr


[정노천의 우리역사산책34] 두 문자가 하나인 것을


 
 


 

[레미컴미디어=정노천 컬럼니스트] 고조선(古朝鮮) 3세 단군 가륵(嘉勒, B.C 2181) 경자 2(庚子 二年)에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가림토)를 만들게 했다.

 

이미 한웅 시대(B.C. 3897)에 문어체(文語體)書㓞(眞書, 神篆)이 있었지만 구어체 글자(口語體 㓞字)가 없어서 백성이 바른 소리로 말하고 쓸 수 없었다.

 

구어체인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세종 조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모체가 됐다.

 

세종이 이를 더욱 체계적으로 재정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로써 우리는 문어체 문자와 구어체 문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

 

이 두 문자는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고 조화되어 더욱 폭 넓은 어문생활을 구사하게 했다.

 

한웅시대 신지 혁덕이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이를 문자화하여 짐승가죽에 기록한 데서 출발한다.

 

바로 이것이 태고 문자의 시조인 녹도문(鹿圖文)이었다.

 

이 문자는 훗날 가림토(加臨土)의 원조가 되는 글이기도 하다.

 

우리의 선인들은 이토록 지혜롭고 영명하신데 후손은 이리도 무지몽매할까!

 

한글전용 후에 서글(書㓞, 표의문자)을 모르게 되면 우리의 뿌리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역사는 무엇으로 복원하고 바로잡을 것인가?

 


◇정노천(시인)
골프저널 외 다수 잡지 편집국장 역임
우리원형연구소 소장


정노천 컬럼니스트|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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