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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노천의 우리역사산책49] 함흥차사와 살곶이 다리

4everLove 2016. 2. 15. 13:18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5/11/17/%ec%a0%95%eb%85%b8%ec%b2%9c%ec%9d%98-%ec%9a%b0%eb%a6%ac%ec%97%ad%ec%82%ac%ec%82%b0%ec%b1%8549-%ed%95%a8%ed%9d%a5%ec%b0%a8%ec%82%ac%ec%99%80-%ec%82%b4%ea%b3%b6%ec%9d%b4-%eb%8b%a4%eb%a6%ac/


레미컴미디어신문 : http://remicom.co.kr


[정노천의 우리역사산책49] 함흥차사와 살곶이 다리


 
 


 

[레미컴미디어=정노천 컬럼니스트]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동생들을 주살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함흥에 가 있던 태조 이성계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태종이 보낸 사자들이 오는 족족 죽여 버리자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났다.

 

부왕을 맞을 준비를 하던 태종은 둑섬에다 큰 차일을 치면서 굵고 높은 기둥을 세웠다.

 

도착한 태조가 태종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태종을 향해 별안간 활을 쏘자 급히 기둥을 안고 피했고 화살이 기둥에 꽂혔다.

 

이후 화살이 살벌하게 꽂혔다는 의미로 살곶이벌로 불렸다는 설이 있고 한양대 옆 중랑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살곶이 다리가 됐다.

 

동대문에서 뚝섬까지 기동차(전동차)라는 협궤열차가 다녔다.

 

1960년 중반까지 전차가 있었다.

 

지금 동대문 이스턴 호텔 자리가 출발점이고 창신동 청계천 8가 쪽으로 뻗어 가면 영미교라는 다리(지금 동묘 근처)가 있는데 그 다리 곁을 지나서 왕십리로 들어가서 한양대 밑으로 해서 뚝섬에 다다른다.

 


◇정노천(시인)
골프저널 외 다수 잡지 편집국장 역임
우리원형연구소 소장


정노천 컬럼니스트|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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