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족
의심 명단에서 삭제-괜찮은
인물로 판단-
“성격이 무척 급하군요.
조금만 천천히 배운
동작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복습하세요.
지금은 볼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지 않네요.”
“…”
박 기자는 호흡을 가다듬고 처음 배운 동작
하나하나를 생각했다.
몸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불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반복하다보면 동작이
몸에 익숙해지는 시기가 있어요.
골프란 의지대로 되는
운동은 아닌 것 같더군요.”
▲사진=본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골프를 오래 하셨나
봐요?”
박 기자의 등 뒤에서 계속 무어라 말을
해대는 남자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박 기자는 뒤 돌아 말을 붙였다.
“햇수로는 20년 가까이 되지만 시간이 없어 평균 한 달에
한번 정도 필드에 나가니까 시간 날 때 이렇게 연습장이라도 찾아오는 겁니다.”
“골프는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세요?”
박 기자의 질문에 남자는 멈칫하더니 곧 말을
받았다.
“질문에 대답할 만큼 골프를
모릅니다만,
저는 골프는 자기
수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욕심을 갖거나
서두르면 볼이 잘 안쳐지기 때문이죠.”
박 기자는 남자가 꽤 괜찮은 인물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제비족 의심
명단에 넣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남자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황급히 골프채를 챙겨들고 자리를 떴다.
‘연습장은 나 혼자 지키게
됐네.’
박 기자는 혼잣말을 중얼대다 연습장 구석
휴게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유리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출입문은 달지 않은
휴게실 소파에서 한 여자가 일어서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는 파도처럼 긴
웨이브머리를 출렁여보였다.
이내 연습장으로
들어선 여자는 방금 남자가 나간 자리에 와서 섰다.
170센티쯤 돼
보이는 큰 키에 세련된 디자인의 골프복을 입고 요즘 유행하는 동안 화장으로 청순미를 강조한 여자였다.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
눈인사를 건네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박 기자는 그녀의
시원스런 몸놀림과 소리만 들어도 대단한 파워를 느끼게 하는 여자의 골프 능력에 주눅이 들어 멍해졌다.
여자는 실력을 보여주려는 듯 아이언으로
시작해서 우드와 드라이버까지 쉼 없이 휘둘렀다.
여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평소에 골프는 운동이
아니라고 말했던 박 기자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골프도 열심히 하면 운동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점심식사 나간 심
프로는 오지 않았고,
김 부장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주눅 들어 공을 못치고 있을 수도 없어 박 기자는 용기를 냈다.
심호흡을 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그립을 잡은 손의 위치를 확인하고 클럽헤드까지 확인 한 후 심 프로가 했던 대로 하나,
둘,
셋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공을 쳐냈다.
성공이었다.
박 기자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왕초보지만 망신은
면했다는 안도감이었다.
공이 제대로 맞았는지
소리가 달랐다.
이번처럼만 잘 된다면
한번 맘먹고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여자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계속>
작가
유현숙(劉賢淑)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띠뱃놀이』
로
등단,
그해
KBS-TV
드라마 작가
3기로 당선.
15년 동안
신문·잡지기자와 르포라이터로
활동,
잡지에 소설과 동화를
연재.
2003년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
현재는 창작 활동과
병행해 사단법인 한국희곡작가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
펴낸 책으로는 『서울 수첩』
『엄마는
홈닥터』
『봉자의
겨울』
『나무여자(근간)』
등이
있다.
또 『체 게바라』는 저자가 8년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노력 끝에 소설로는
세계 최초로 1997년 초판을 발행(자음과모음),
우리나라에서 체
게바라 열풍의 진원지가 됐다.
그후 초판본을 수정
보완해서 2004년에 개정판(열매출판사)을 펴냈으며,
체 게바라 사망
40주년을 맞아 2007년에 다시 양장본으로 새롭게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