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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3

4everLove 2016. 3. 17. 14:58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6/03/17/%ec%97%b0%ec%9e%ac%ec%86%8c%ec%84%a4-%ed%99%a9%ed%99%80%ed%95%9c-%ec%97%ac%ed%96%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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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3


 
 
 


사랑을 찾아 돌아온 이승

 

하늘의 딸이라는 무녀 천녀(天女)를 처음 만난 것은 작은 문학 행사장에서였다. 그녀는 평소 언니라고 부르는 시인을 따라왔다고 했지만, 조금도 낯설어하지 않았다. 십여 년 연상인, 사십 대 초반의 그녀는 행사가 끝날 무렵에서야 나의 시선을 의식했다.

 

보였어요?”

 

얼마 후, 평택으로 찾아갔을 때 천녀가 내게 던진 첫 번째 말이었다.

 

그녀는 가끔 자신이 무녀라는 사실을 감춘다고 했다. 무녀의 일이 아닌, 다른 일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설 때는 하늘의 딸, 신의 딸이라는 것을 철저히 감추는데 어찌알았냐고 물었다.

 

보였어요.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정말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무엇인가 분위기가 다른 여자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무녀일 줄을 상상도 못했다. 석 달마다 갖는 문학행사는 늘 지루했다. 틀에 박힌 문예계간지 발행인과 작가회 회장의 인사, 이어지는 원로 시인의 축사, 그리고 신인상 시상, 시낭송 등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어수선했다. 매번 선배의 강요로 참석한 자리라 나 역시 건성건성 행사를 지켜보곤 했었다.

 

뭐가 보였나요?”

 


사십 초반의 무녀라면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겪을 만큼 겪은 뻔뻔한 나이인데 그렇지 않았다. 수줍은 듯 눈길을 피하며 웃는 몸짓이 순진한 소녀였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녀의 웃음과 몸짓 속에 숨어 있는 차가움을 발견하곤 조심스럽게 대했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유난히 검은 눈 화장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웃었다.

 

또 있어요.”

 

그녀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어른들이 보였어요.”

 

그녀의 눈빛이 멈췄다. 조금은 긴장한, 하면서도 어디 얘기해봐. 어떤 어른들이 보였는지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봐. 재촉하는 눈길이 숨을 죽였다.

 

세 분의 할아버지가 보였어요. 천녀님 뒤에 서 있었어요.”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시인들이 앉아 있었다. 좌우에도, 앞자리에도 온통 시인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녀에 대한 호기심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진정한 세계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참 신기한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관심이 생긴 무렵 그녀를 만났다. 무녀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통한 궁금증의 해소보다 직접 만나야겠다는 욕심으로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수염이 땅에 끌리고, 또 한 할아버지는 돼지처럼 뚱뚱하고…….”

 

말끝을 흐리며 천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눈을 흘겼다. 긴장했던 표정을 풀었다. 눈을 감은 채 담배를 피우다 쿡쿡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이번에는 내가 긴장을 했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유치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결코 그녀의 세계를 놀리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뭐랄까? 최고의 무녀는 세 분의 할아버지에게서 신기를 받고 있다는 어설픈 귀동냥으로 접근하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세계가 사실이든 아니든 신의 세계가 아닌가.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내가 모시는 할아버지는 심술이 많아요. 화도 잘 내고요.”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담배 연기를 가슴 깊이 마셨다가 한숨과 함께 길게 내뿜는 모습에 어떻게 사과를 할까, 난감했다.

 

어쩌죠? 단단히 혼 좀 내라고 하시는데.”

 

차가운 눈길로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에 동조할 수 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울상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소설가 정병국

19478월 춘천에서 태어났다.

일간 내외경제, 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 근무하며 인조인형의 집’, ‘안개비’, ‘외다리 춤’, ‘침묵하는 여자’, ‘황사바람’, ‘꿈을 줍는 여자’, ‘타인의 얼굴등 다수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작품집으로는 에세이집 사부곡(思父曲)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장편소설집 가슴속으로 흐르는 강’, ‘이혼의 진실등이 있다. 현재 도서출판 지식과 사람들대표로, 계간 시와 수상문학발행인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국 작가|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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