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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세상] (주)신한코리아 김한철 대표이사① -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4everLove 2016. 5. 25. 02:07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6/05/24/ceo%ec%84%b8%ec%83%81-%ec%a3%bc%ec%8b%a0%ed%95%9c%ec%bd%94%eb%a6%ac%ec%95%84-%ea%b9%80%ed%95%9c%ec%b2%a0-%eb%8c%80%ed%91%9c%ec%9d%b4%ec%82%ac%e2%91%a0-%ec%9c%84%ea%b8%b0%eb%a5%bc-%ea%b8%b0/


레미컴미디어신문 : http://remicom.co.kr


[CEO세상] (주)신한코리아 김한철 대표이사① -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사진=()신한코리아 김한철 대표이사

 

뚝심과 신용으로 골프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다

 

[레미컴미디어=최양수 기자]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면 극 후반에 소개되는 협찬사에 JDX 골프웨어라는 이름을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신한코리아( 대표이사 : 김한철 · http://jdx.co.kr )JDX 골프웨어를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한 활발한 마케팅을 해오고 있다. 그 중 한 방법으로 드라마 협찬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조강치처 클럽, 에덴의 동쪽, 내조의 여왕, 신데렐라맨, 솔약국집 아들들, 선덕여왕 등 많은 드라마에 제작 지원을 하면서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이미 JDX 골프웨어라는 브랜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JDX 골프는 2002년 잔디로 골프웨어를 런칭해 골프시장에서 자리매김을 확고히 했다. 2006JDX 골프 라인 런칭, 20103월부터 잔디로 골프웨어를 JDX 골프로 브랜드 리뉴얼 런칭하며 독립적인 JDX 골프 시대를 열게 됐다.

 

()신한코리아가 JDX 골프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가동한지 10년이 됐다. JDX 골프의 역사는 곧 김한철 사장의 역사라고 할 만큼 그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다. 그는 1999년 중국 백화점 유통사업에 실패하면서 2000년 국내로 귀국한 뼈아픈 쓰라림이 있다.

 


그나마 그의 뚝심과 신용이 있었기에 유통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직원들은 월급을 안 받아도 되니까 다시 시작하자는 의기가 모아져 다시 유통사업에 뛰어들어 짧은 시간에 돈을 마련했다.

 

2000, 2001년 사이에 10억원을 마련하면서 그동안 꿈꿔왔던 브랜드 사업에 뛰어 들게 됐다. 유통 사업하다가 브랜드 유통 가능성이 보인 골프웨어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2001년에 준비해 2002S/S 때 기존 유명 브랜드 컨셉으로 옷을 만들다보니까 기존 브랜드들의 기득권이 워낙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어 뚫을 틈새가 없었다. 신생업체로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 국내 주요 백화점 바이어들과 접촉해도 내셔널브랜드로서는 정착하기엔 브랜드 네임도 약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잔디로라는 내셔널 브랜드로서는 한계성 있었고 당시 백화점은 힘들겠다는 분석 끝에 방향을 로드샵으로 틀었던 게 적중했다. 2002년 당시 골프시장은 크진 않았지만 향후 엄청나게 규모가 커진다는 비전을 점치고 틈새시장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래서 골프웨어를 선택하게 됐다. 만약 그때 아웃도어 쪽으로 붐이 일었다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을지도 모른다고 김한철 사장은 밝혔다.

 


팽팽한 경쟁 속이라 백화점 보다는 로드샵으로 방향을 잡고 신문광고를 하면서 적중타를 낸 것이다.

 

2002S/S 때에는 옷을 만들다보니 기존 내의 컨셉이기 때문에 선호도가 부족했다. 첫 시즌에는 실패하게 됐으며 겨우 30%를 팔고 나머지는 재고로 쌓였다. F/W 시즌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김 사장이 직접 영업을 뛰며 백화점, 전문샵에 판매해서 재고를 소진하며 자금을 만들었다.

 

하지만 F/W 때 다시 시작했지만 패션 스타일이 변화가 없어 결국 2002F/W에도 실패하면서 2차례의 조직개편 등을 거치면서 2005년까지 힘든 싸움을 지속했다.

 

무엇보다도 유통망도 문제였다. 유통망이 일정 규모가 돼야 한다는 점을 인지했다. 2002년에는 판매유통망이 20여개 정도밖에 안 돼 생산량 100200장을 겨우 소화하다보니 생산 원가가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했다. 최소한 7080개 정도는 돼야 200300장 이상 넘어가니까 원가 포지션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내부 디자인과 기억력을 보완한 후에는 2005년까지 유통망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렸고, 그 과정에서 부도위기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김한철 사장은 회고했다.


최양수 기자|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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