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어답산에 들다 - 정노천 시인-
양띠해 을미년 사변이라더니 상처이기도 하겠지만 털털 털어버리고 육십갑자 한 바퀴 다 돌아서 횡성 어답산에 들었네 공직을 떠나 진한 태기왕이 밟고 간 산 자락에 몸을 던졌다 양띠인 그는 그 산으로 도망간 것이 아니고 제2의 삶을 거머잡으러 스스로 들어갔다네 왕이라서 도망가면서 밟았다해서 어답산이 되는데 태기왕을 쫓아 박혁거세가 뒤따랐다고 하는데 쫓고 쫓기는 일이 흩어진 구름 속 같을 까 찢어진 바람 속이었을까 지금 전설로만 남아있는데 그 양띠 사내는 어답산 기슭에 터를 잡아 제 2의 생을 일구려는데 땅이름 하나 바꿀 힘이나 있을지 인생의 끝자락 여문 열매라서 수필을 쓰다가 인생의 정수라 엑기스만 건져서 시를 쓰다가 인생의 잡다한 기억들을 끌어 모아 소설을 쓰려고 집필실 하나 마련해서 그 산에 들었다네 갑천골 삼거리마을 앞에 깊숙이 물길을 모우고 그를 받아 들였네 뒤에 솟은 어답산은 아니라도 미답산으로 터를 닦으며 진한의 슬픔도 버무리고 혁거세 알의 기운까지 끌어내어 보소
그림|황하림(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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