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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1

4everLove 2016. 3. 7. 03:59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5/12/13/%ec%97%b0%ec%9e%ac%ec%86%8c%ec%84%a4-%ed%99%a9%ed%99%80%ed%95%9c-%ec%97%ac%ed%96%891/


레미컴미디어신문 : http://remicom.co.kr


[연재소설] 황홀한 여행1


 
 
 


사랑을 찾아 돌아온 이승

 

-자살이라고?

 

10년 전의 기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문마다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결론은 우울증 때문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주검을 발견한 첫날의 기사는 충격이었고, 둘째 날은 타살로 몰아가더니 넷째 날부터 느닷없이 우울증 자살로 기사의 방향이 머리를 틀었다.

 

가위를 찾았다. 늘 책상 한쪽의 연필 통에 꽂아두고 배달되는 편지나 책 봉투를 자르곤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책상 밑으로 떨어졌나 싶어 살펴보아도 손잡이가 빨강색 가위는 보이지 않았다. 서랍마다 열어보고, 책장 곳곳을 찾다 컴퓨터 몸체 위의 국어사전 책갈피에 숨어 있는 가위를 발견했다. 초등학생용 가위가 왜 국어사전의 책갈피 사이에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 년 내내 단어 하나 찾아볼 리 없는데 가위가 사전 갈피에 있다니 신기했다.

 

-뭐야 이건? 기사 제목도 똑같잖아?

 

십중팔구 아버지가 모아놓았을 여러 종류의 신문에서 내 죽음에 대한 기사만 오려냈다. 날짜별로 방바닥에 죽 늘어놓고 기사를 비교했다. 첫날은 신문사마다 기사의흐름이 제각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물줄기로 합쳐지더니 나흘째부터 일제히 프로골프 선수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갔다.

 


타살의 의문에서 왜 갑자기 자살로 기사의 흐름이 바뀌었을까? 그것도 여러 신문이 짜듯 자살로 축소하며 기사의 꼬리를 내릴 이유가 무엇일까? 세계를 들었다 놓는 프로골퍼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의 언론매체에서는 기사 초점의 선수가 아닌가. 사건 첫날에는 마치 세상이 뒤집힌 충격으로 보도했다가 왜 우울증의 자살로 급선회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고층아파트의 창가에서 관악산을 바라다보았다. 산 정상에는 송신탑이, 그 옆으로 원형의 하얀 건물이 유월의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체력단련을 위해 산악구보 훈련장으로 활용했던 관악산이 오늘은 답답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기슭에서 정상까지 온통 바위산인 관악산 등산로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집에서 가까운 체력단련 장소로는 그만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인천바다가 온몸이 부서져 내리는 가쁜 숨을 어느새 잠재우곤 했다.

 

게임이 안 풀릴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릴 곳도 관악산이었다. 밑에서 정상까지, 정상에서 산 아래 기슭까지 돌밭인 등산로를 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실제로 돌을 잘못 밟아 발목이 심하게 접질리면서 게임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때 못내 안타까워했던 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라는 목발을 짚은 내게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다가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떡해? 어떡해?”

 

수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어떡해를 연발하는 안타까운 몸짓에 실실 웃자 화를 냈던 그녀가 보고 싶었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했다면 행복한지 알고 싶었다.

 

수라는 장례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사랑하던 사람에게 이별의 손도 흔들지 않았다. 멀리, 골프장이 바다처럼 굽어 보이는 추모공원 수목장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죽음이 알려진 그날부터 바람결처럼 사라진 그녀였다. 바닷가의 작은 모텔에서 자는 듯 죽은 기사가 실린 그날 아침 수라는 내 전화를 받고 여행차림으로 집을 나섰을까?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겠지만 궁금했다. 가능하다면 그날 아침 그녀의 시간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실신하는 부모님 때문에 그녀가 받았을 충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 줌의 재로 나무 밑에 누웠을 때에도 오직 아버지, 어머니 걱정뿐이었다. 그분들이 어떻게 견뎌내실까, 죄송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런 사람이 뒤늦게 사랑을 확인하려는 것은 형편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누구의 장난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신문의 기사가 타살에서 자살로 급선회했는지 추적하고 싶었다. 그 당사자를 찾아내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듣고 싶었다. 방바닥에 널려 있는 신문기사를 다시 찬찬히 읽으며 기사의 끝에 적혀 있는 기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모두 만나볼 생각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소설가 정병국

19478월 춘천에서 태어났다.

일간 내외경제, 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 근무하며 인조인형의 집’, ‘안개비’, ‘외다리 춤’, ‘침묵하는 여자’, ‘황사바람’, ‘꿈을 줍는 여자’, ‘타인의 얼굴등 다수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작품집으로는 에세이집 사부곡(思父曲)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장편소설집 가슴속으로 흐르는 강’, ‘이혼의 진실등이 있다. 현재 도서출판 지식과 사람들대표로, 계간 시와 수상문학발행인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국 작가|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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