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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2

4everLove 2016. 3. 7. 05:01


기사 원본 : http://pluswater.cafe24.com/2016/03/06/%ec%97%b0%ec%9e%ac%ec%86%8c%ec%84%a4-%ed%99%a9%ed%99%80%ed%95%9c-%ec%97%ac%ed%96%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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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홀한 여행2


 
 
 


사랑을 찾아 돌아온 이승

 

기자, 그 인간들?

 

애당초 그들은 호감이 가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이에나 같은 집단이었다. 크든 작든 먹잇감이 있으면 벌떼처럼 모여들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사자보다 더 억센 턱 힘으로 뼈까지 부숴버리는, 말 그대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집단들이었다. 먹잇감이 싱싱하게 살아 움직일 때는 멀리서 빙빙 돌며 관찰하다가 상처를 입거나 쓰러지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게 그들의 생리였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남녀의 싸움질과 불타는 집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을 때가 잦았다. 너희는 꼭 이렇게 해야 먹고사니? 그 방법밖에는 출세할 길이 없니? 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주먹을 날리고 싶은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기자의 이름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나가다 멈췄다. 주요 일간지의 스포츠 기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사회부 쪽은 아니었다. 얼굴이라도 아는 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싫든 좋든 알고 지내던 기자라면 섭섭한 마음이 앞설 것이 뻔했다. 다른 기자는 몰라도 너는 적어도 더욱 더 사실을 확인하거나 추적한 후 기사를 썼어야 하지 않았느냐 따질 게 분명했다. 억울하게 죽은 한 생명을 타살로 또 한 번 죽이는 게 기자의 사명이냐고 욕부터 할 것이다.

 


방바닥에 늘어놓은 신문기사를 주섬주섬 모으다 심호흡을 했다.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 단 한 시간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문상객을 수발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문상객의 음식수발을 하다 영정 앞의 향이 꺼질까 수시로 달려왔다. 재가 날린 향로 주변을 깨끗이 치우다 웃고 있는 영정을 바라보기도 했다.

 

-누구지? 짝사랑?

 

-짝사랑했다면 슬픈 표정이어야 하는데 시종 덤덤했잖아.

 

그 아가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남동생 누구도 신경 쓰지 못했다. 가족들은 슬픔에 지쳐 있었고, 그녀도 침묵 속에 문상객 음식수발에 지쳐있었다.

 

장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한 줌의 재로 묻힌 나무 곁을 맨 마지막으로 떠났다. 그때야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몇 번이고 멈춰 내가 묻힌 수목을 향해 합장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수목장을 떠났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그녀가 수라의 얼굴과 나란히 다가왔다.

 

-수라는 왜 얼굴도 비치지 않았을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왜 수목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을까?

 

기자들을 만나기 전에 수라부터 찾기로 했다.

 

수라는 그냥 적당히 만나던 여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양가에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 후 가을쯤, 늦어도 이듬해 봄 안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예식장까지 미리 알아보고 있었다. 이런 수라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충격이었다. 연인의 죽음이 느닷없는 일이라 몰랐거나, 아니면 죽음을 아는 순간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했다면 모를까. 그녀의 외면은 믿을 수 없는 절망과 아픔이었다.

 

멀리 골프장이 굽어 보이는 수목장에서 매일 기다렸지만, 수라는 일주년이 다가와도 찾아오지 않았다. 영혼이라도 영원히 살아 주길 원한 아버지는 아들을 굵고 훤칠한 소나무 품에 안겨 주었다. ‘정설운! 너를 사랑한다. 200242일 가족이라고 소나무에 매달아 놓은 수목장 팻말에 활짝 웃는 사진이 있어 찾기도, 알아보기도 쉬웠다. 가족, 친척, 친구 등 이런저런 관계로 수목장을 찾았다가 얼굴을 알아보고 명복을 빌어주는 골프팬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배신감에 분노의 숨을 가쁘게 몰아쉬어야 했다. 죽음이 이승과 저승의 만날 수 없는 경계로 갈라놓았다고 그렇게 돌아설 수 있을까. 그러나 한 해, 두 해, 마침내 십 년으로 접어들면서 원망과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했다. 그녀도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힘들었을 터인데, 그 절망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궁금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들은 몇이나 두었는지, 그녀가 낳은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사는 형편이 어렵다면 신들의 힘을 빌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수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세 분의 할아버지, 산신령과 도인 그리고 달마대사를 빼닮은 스님의 힘을 빌리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다만 할아버지들이 만나게 해줄지 그게 문제였다. (다음 호에 계속)

 


소설가 정병국

19478월 춘천에서 태어났다.

일간 내외경제, 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 근무하며 인조인형의 집’, ‘안개비’, ‘외다리 춤’, ‘침묵하는 여자’, ‘황사바람’, ‘꿈을 줍는 여자’, ‘타인의 얼굴등 다수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작품집으로는 에세이집 사부곡(思父曲)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장편소설집 가슴속으로 흐르는 강’, ‘이혼의 진실등이 있다. 현재 도서출판 지식과 사람들대표로, 계간 시와 수상문학발행인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국 작가|remico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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